Deployment in Lebanon: a postmortem (KOR)

Wrapping up Deployment in Lebanon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기대감의 교차를 의미한다. 그 오묘한 감정의 조화 때문에 우리는 긴장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앞으로 조심스럽지만 힘차게 나아간다. 당황스럽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재빨리 대처한다. 사명감보다 가볍고 견고한 전투복이 어디 있으랴, 매사에 혼을 쏟아 자기 자신의 일부를 펄펄 끓는 열정의 용광로에 부어넣는 것이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자세, 예의이자 마땅히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동명부대 18진의 329, 직책과 계급을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선발자원이라는 영예를 자랑스러운 무게로 생각하고,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고정감시초소 근무에서부터 식당청소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부대 전개 이후 첫 몇 달간은 신혼처럼 즐거움이 베어났다. 누구나 만사에 감사했고, 모두에게 친절했으며, 사소한 갈등은 오히려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뽐낼 기회로 다가왔다. 상당수 간부들은 너도나도 유엔모()저는 지금 금연 중입니다배지를 무궁화훈장처럼 뽐냈고, 용사들은 아이돌의 찰랑거리는 머리보다, 짧고 단정한 머리를 한없이 멋스럽게 보이게 하는 작전대대장님을 따라하려 너도나도 머리를 밀다가, 이윽고 거울에 비추어진 웬 이름모를 해산물의 모습 속에서 군 생활 20년과 20개월의 가랑이 찢어지는 차이를 실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스레 같은 일상의 반복에 나태함이라는 녹이 조금씩 여기저기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갈등의 매듭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하게 얽히어 갔고, 대화와 소통은 때로는 부족하기도, 심지어는 단절되기도 했다. 하나로 시작된 동명부대는 우리쟤네’, ‘로 나눠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병의 가장 힘든 점은 업무도 작전도 아닌 사람이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자주 들은 말이지만 결코 틀리지 않았기에 작대기부터 대나무꽃까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이른 아침 U자 배관이 없는 소변기의 쩌렁찌릿 암모니아 냄새와 같은 시설의 불편함은 감수하면 되고, 계절도 휴일도 밤낮도 없이 찾아오는 we go together 무장사냥꾼들에 의한 업무와 경계의 격상은 극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 같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빚었던 갈등을 덮고 또 덮어, 그 상처가 썩어 번질 때까지 계속되는 고조된 긴장감의 줄타기는 피차 감정노동이며 주변인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시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찰은 자연스러울뿐더러 건강한 대인관계에는 불가결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요지는 마찰이 아니라 해소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리 동명부대가 자랑스럽고 감사한 이유다.

초심을 유지하자라는 말은 참 실천하기 어렵다. 결혼에 골인하기는 쉬워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기에 우리는 우유빛깔 환상에 젖은 파릇파릇한 신혼은 축하해주지만, 빛바랜 금혼을 맞이한 부부에게 그 이상의 공경을 표한다. 때문에 단장님이 초지일관 초심을 유지하자는 말씀을 하실 때, 그 무게가 날이 갈수록 실감났다.

기대감에 부푼 출항 날 누구나 즐거워하고 유쾌할 수 있다. 하지만 육지로부터 수십만 리 떨어져 사정없이 내리치는 비바람과 파도 속에 마음의 평정과 희망을 유지하며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특별한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긍정적이어서는 아니 되며, 일에 능숙하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100일 지나고 200일이 지나 타인을 지적하고프고, 자신의 배는 더 채우고 싶은 욕망을 조절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이 하려 달려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끌림을 유도하는 존중과 배려를 중시하는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동명부대가 정말 대단하다. 분위기를 조성한 리더들은 군은 임무에만 치중해 유연성이 미흡할 것이라는 저의 선입견을 뒤집었고, 그 통제에 발맞추어 따른 모든 동명인들은 UN의 수많은 국가들에게 그 어떠한 하루짜리 수검이나 작전보다도 8개월에 걸쳐 선진(先進)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숨은 영웅들은 우리 주변에서 늘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용맹함과 참된 군인정신은 화기(火器)의 크기와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아님을 이역만리 레바논에서 비로소 실감했다. 격양된 목소리로 마켓웍스에서 혹은 레바논 하우스에서 전투적인 흥정 끝에 남녀노소 하비비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모습, 주임원사님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나서서 부대 곳곳을 청소하고 내 집처럼 아끼고 정비하는 모습, ‘나는 일개 병사니까라는 인식을 탈피하고 초월하여 임무수행과 인수인계 절차에 열정을 쏟는 용사들, 그리고 각기 다른 어려움을 때론 묵묵히, 때론 소통하며 크고 작은 마찰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화재가 아닌, 더 의미있는, 공감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불씨가 되게끔 주조(鑄造)하는 동명인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책의 머리말을 읽는 것은 쉽지만 맺음말까지 읽는 것은 어려웠던 것 같다. 갈등과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다시 담지 못할 말을 내뱉는 것은 쉽지만, 그 오해를 연금(鍊金)하여 더 하나 된 부대를 만드는 것은 실로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담던 그릇에 금이 가면 도리어 생명을 담는 화분으로 쓸 수 있다는 자세로 서로 격려하고 끌어안았다. 240여일의 임무수행 끝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의 수많은 영웅들 속에서, 사람, 사고, 그리고 부대의 마스코트 동명이까지도 품을 수 있는 깊은 심성의 사랑꾼들 덕분에 안전하고 완벽한 임무수행은 물론,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동양적인 절제와 예()에 입각한 가까움과 전우애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해외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부대와 경험, 그것을 아름다운 장식에 이르게 한 것이 바로 우리를 진정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만드는 가장 큰 영광이 아닌가 싶다.